신석기시대 이전에도 우리 조상들은 물고기를 잡아먹었을까? 이것이 역사적 사실일 수도 있다는 증거가 나왔다. 증거를 발견한 이는 한창균 전 연세대 박물관장. 그는 연세대 박물관 발굴팀을 이끌고 최근 강원 정선군 매둔동굴에서 구석기시대인 약 2만9000년 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그물추를 발견했다. 그물이 물에 잘 가라앉도록 그물 끝에 매다는 도구가 바로 그물추. 물고기잡이를 했음을 알려주는 증거다.

고고학자의 꿈을 품고 있는 어린이 이한동 군(서울 동작구 서울보라매초 5)이 한 전 관장을 만나기 위해 출동했다. 한 전 관장은 박물관장으로서의 임기가 끝나기 하루 전인 지난달 30일 연세대 박물관장실(서울 서대문구)에서 이 군을 반갑게 맞이했다.

한창균 전 연세대 박물관장(오른쪽)을 만난 어린이 이한동 군.

돌멩이 하나가 특별한 이유

“매둔동굴 그물추는 어떻게 생겼나요”라고 이 군이 물었다. 한 전 관장은 유물함에서 어른 손바닥 반만 한 크기의 그물추를 꺼내어 보여주며 “받침돌 위에 자갈을 올린 뒤 자갈 위를 망치로 ‘땅’ 내려쳐 깎으면 이렇게 납작한 모양의 돌이 된다”고 설명했다.

한 전 관장은 매둔동굴 근처에서 자라는 버드나무 속껍질을 꼬아 발굴팀이 직접 만든 노끈도 보여줬다. 구석기시대 조상들도 이렇게 노끈을 엮어 만든 그물로 물고기를 잡았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한 전 관장은 “자칫 별다를 것 없어 보이는 이 돌멩이가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구석기시대 조상들이 그물을 쳐서 물고기를 잡아먹었다는 증거가 됩니다. 여러분의 교과서에는 조상들이 신석기시대에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물고기를 잡아먹었다고 나와요. 제가 추정하기로는 후기 구석기시대부터 물고기를 잡아 굶주린 배를 채웠을 겁니다. 매둔동굴에서 피라미 같은 작은 물고기의 등뼈도 발굴됐답니다.”(한 전 관장)

강원 정선군 매둔동굴의 퇴적층에서 발견된 그물추. 문화재청 제공

그물추, 어렵게 만났어요

이 군이 “관장님이 매둔동굴을 발굴·조사하는 과정에서 어떤 점이 가장 힘드셨나요”라고 물었다. 한 전 관장은 “선사시대의 흔적이 남아있는 동굴을 찾는 데만 1년 넘게 걸렸다”고 했다. 2015년부터 강원 영월군·정선군·태백시 일대 동굴 수십 군데를 다녔지만 유물이 나오지 않아 허탕 치기 일쑤였다는 것. 동굴은 햇빛이나 비바람의 영향을 받지 않아 인류의 뼈 화석 등 유물이 비교적 잘 보존되는 장소로 꼽힌다.

2016년 매둔동굴을 찾았지만, 발굴팀은 동굴 앞에 흐르는 거센 하천 앞에서 또 한 번 좌절했다. 발굴을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이 강을 건너야 했기 때문이다.

“여름철 홍수로 강이 불어났을 때는 아예 작업을 할 수 없었어요. 이런 난관을 극복하고 발굴한 그물추라 더욱 소중하지요.”(한 전 관장)

고고학자는 체력이 필수

고고학자를 꿈꾸는 어린이들에게 조언을 해달라는 이 군의 요청에 한 전 관장은 “고고학자는 쉽게 지치지 않는 체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제 스승이자 우리나라 최초로 구석기시대 유적인 충남 공주시 ‘석장리 유적’을 발굴하신 고(故) 손보기 연세대 사학과 교수님이 떠오릅니다. 연세대 사학과에 입학한 저는 근로장학생으로 박물관에서 일하면서 그분을 보고 고고학자의 꿈을 키웠지요. 손 교수님은 굉장히 힘이 좋으셔서 젊은 대원 못지않은 빠른 발로 현장을 누비셨어요.”(한 전 관장)

한 전 관장은 “현장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땅을 파고 물 체질을 해서 인류 역사 발견에 도움이 될 유물을 발굴하려면 지금부터 운동을 열심히 하라”고 조언했다.

연세대 박물관 발굴팀이 매둔동굴에서 발굴 및 조사에 참여하고 있는 모습. 연세대 박물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