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16일 오전, 충북 청주시 오송읍의 지하차도 앞에서 소방당국이 침수 사고로 실종된 사람을 찾고 있는 모습. 동아일보 자료사진

[1] “국민 생명과 재산 보호를 위해 1억2000만 원을 쓸 수 없다는 인식이 안타깝다.” 청주지법 재판부가 지난달 31일 ‘오송 참사(비참하고 끔찍한 일)’를 일으킨 공사 현장소장에 대해 법정최고형인 징역 7년 6개월을 선고(재판장이 판결을 알리는 일)하면서 한 말이에요. 이 돈이면 지난해 7월 충북 청주시에 있는 미호천교 도로 확장 공사장에 홍수 방호벽(외부 충격을 막기 위하여 바위, 진흙, 콘크리트 등으로 만들어 세운 두꺼운 벽 모양의 칸막이)을 설치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건설사는 콘크리트 방호벽 대신 흙으로 임시 둑을 쌓았어요. 제대로 다지지도 않았고, 높이도 모자랐어요. 부실(튼튼하지 못하고 약함) 공사였지요. 이 둑이 무너지면서 인근 오송 궁평2지하차도에서 14명이 귀중한 목숨을 잃었어요. 판사는 “최소 징역 15년은 선고해야 했는데 한없는 무기력함을 느낀다”고 호소했어요.

[2] 이번 주면 전국이 대부분 장마권에 들어요. 요즘엔 집중 극한 호우(매우 심하게 내리는 비) 탓에 강이 흘러넘칠 위험이 더욱 커졌어요. 지난 18일, 감사원이 지하 공간 침수(물에 잠김) 대비 실태를 점검한 보고서를 냈는데, 전국 지하차도 1086곳 중 제방(홍수 때 물이 넘어 들어오지 못하도록 쌓은 둑) 붕괴 시 물에 잠길 우려가 있는 곳이 최소 182곳이나 됐어요. 그 가운데 159곳(87%)은 차량의 진입을 통제하는 기준에 인근 하천 홍수주의보 같은 외부 위험요인이 빠져 있는 등 기준조차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채였지요. 132곳(73%)은 차량 진입 차단시설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어요.

[3] 결국 ‘오송 참사’를 겪고도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거예요. 지방자치단체가 행정안전부에 예산 지원을 요청한 지하차도 40곳 중 17곳은 지원을 받지 못해 차량 진입 차단시설을 설치하지 못했다고 해요. 환경부의 홍수 관리 대책은 시작부터 구멍이 나 있었어요. 용역 계약을 맺었던 업체가 전체 하천의 6.3%인 235개 하천을 분석 대상에서 뺀 거예요.

[4] 사실 오송 참사 역시 그로부터 3년 전 부산 침수 사고와 양상(사물이나 현상의 모양이나 상태)이 판박이(똑같아 변화가 없는 것)였어요. 집중호우가 쏟아진 2020년 7월 부산 동구 초량제1지하차도에서 침수 사고가 났어요. 차량 6대가 잠겨 3명이 숨지고 4명이 다쳤어요. 당시 지하차도 출입 통제 시스템은 3년째 고장 나 있었고, 배수펌프는 작동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어요. 당시 행정안전부는 부랴부랴 자동 차단 시설을 만들고, 원격 차단과 상황 전파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의 대책을 발표했어요. 그러나 3년 뒤 오송의 궁평2지하차도에도 침수 시 차량 진입을 자동 차단하는 시설은 없었어요. 두 달 뒤에야 설치될 예정이었다고 해요. 배수펌프가 먹통이었던 것도 그대로. 막상 물이 지하로 밀려들자 작동을 멈췄어요.

[5] 지하 침수 사고가 반복됐던 7월이 ㉠코앞이에요. 감사원 지적에 대해 행정안전부와 국토교통부는 대책을 마련했다고 했지만 현장에서 얼마나 실행됐는지는 알 수 없어요. 비가 좀 많이 내리는 날이면 운전자들이 지하차도에 진입해도 될지 말지 불안해하는 게 우리 재난 안전 수준이에요. ㉡같은 비극(인생의 슬프고 애달픈 일을 당하여 불행한 경우)을 얼마나 되풀이한 뒤에야 비로소 참사 예방에 전력(오로지 한 가지 일에 온 힘을 다함)을 다하려 하나요.

동아일보 6월 20일 자 조종엽 논설위원 칼럼 정리

※오늘은 동아일보 오피니언 면에 실린 칼럼을 사설 대신 싣습니다.